경남중고재경동창회보 1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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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호] 10월 13일 우리는 이민부 교수의 안내로 이런 멋진 곳들을 둘러봅니다.
작성자.관리자 (2019-09-15 22:56:03) 조회. 30

 

1차 용마 문화기행 답사지 안내 

 

 

한국의 그랜드 캐년 전곡 주상절리

200만년전 한반도 중부, 평강 서남방 검불랑역 북동쪽 약 4떨어진 680m 고지에서 용암이 분출된다. 증기와 용암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중심분출이 아니라 벌어진 지각 틈 사이로 용암이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이른바 열하(裂河)분출이었다. 그렇게 흘러나온 용암은 평강·철원 일대를 뒤덮는다. 쌓인 용암은 낮은 골짜기를 찾아 흐르기 시작한다. 연천 전곡 도감포에서 만나 한줄기가 되어 흐른 뒤 파주 화석정 인근에서 멈춘다. 용암이 식으면서 평강·철원 일대는 광활한 현무암 대지를 이룬다.

뜨거운 용암이 급격하게 식으면서 현무암이 되고, 그 사이 사이에 틈이 생긴다. 이것이 풍화작용을 겪으면서 사각형~칠각형의 기둥 모양이나 널빤지 모양으로 갈라진다. 이런 결정체를 주상절리(柱狀節理·다각형) 혹은 판상절리(板狀節理·널빤지)라 한다.

용암이 식어 조성된 현무암지대는 원래 약한 성질을 갖고 있다. 때문에 침식 원인이 있는 취약지역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무너지는데, 수직절리현상이 있는 곳은 직각의 절벽을 만든다.

특히 임진강·한탄강은 물살이 거센 데다 기온의 연·일교차가 상당하다. 풍화 및 침식 작용이 활발하다. 온탕·냉탕의 변화무쌍한 날씨 조건에다 거센 물살에 따른 강물의 침식이 계속되면서 직벽의 하부는 계속 깎인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주상 및 판상 절리의 절묘한 결정체를 알알이 박아놓은 한탄강·임진강변의 직벽이다. 전곡 현무암 주상절리도 그 중 하나다. 높이 20~30m 직벽. 협곡의 총길이가 4정도다. 바로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도 불리는 장관이다. 이번 국토 문화기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고려에 나라 넘긴 신라 최후의 왕 경순왕릉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능이다. 사적 제244.

경순왕은 927년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놀다가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시해된 뒤 견훤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후삼국 시대 백성들이 잦은 전쟁으로 고통을 겪자 군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935년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넘겼다. 개경(현 개성) 인근 거소에서 고려 5대왕 경종때 까지 장수했다. 경순왕이 죽자 고려 조정은 신라의 복벽 운동을 우려해 개경 100리 안에 있는 이곳 연천 장남면 고랑포에 능을 마련했다. 경주가 아닌 곳에 묻힌 유일한 신라왕인 셈이다.

봉분 높이 3m가량으로 황남대총 등 경주 소재 왕릉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곡장(曲墻)을 둘러 왕의 무덤으로의 위엄을 갖췄다. 조선시대 잦은 전화로 황폐화됐으나 18c 영조 시대 석물을 발견, 재정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조는 당시 경주 김씨 중심의 노론의 협조를 얻어 정국을 안정시켰는데 경순왕을 중시조로 모시는 경주 김씨는 오늘날도 이곳 왕릉에서 제례를 지낸다.

한편 경순왕의 왕세자 김복은 고려에 나라를 넘긴 부왕에 불만을 품고 금강산에 은둔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바로 마의태자다. 그런데 이 마의태자가 금강산에 은둔한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북으로 나아가 여진족 사회에 동화되어 자손을 퍼뜨려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와 후금, 즉 청나라를 건국한 누루하치로 혈통이 이어졌다는 학설도 있다.

 

고구려의 최전방 기지 연천 호로고루(漣川 瓠蘆古壘)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이다. 고구려 장수왕 시대 남하정책의 최전방 기지로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사적 제467.

북동쪽에서 남서 방향으로 흐르는 임진강의 현무암 천연절벽의 수직단애 위에 있는 삼각형의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이다. 성벽의 전체둘레는 성의 가장자리를 따라 쟀을때 약 400m이고, 그중 남벽은 161.9m, 북벽은 146m, 동벽은 현재 남아있는 부분이 93m. 성벽 중 가장 높은 동벽 정상부와 서쪽 끝부분에는 장대(將臺)가 설치되어 있다.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략했을 때 신라 김유신 장군이 평양에서 당나라 군대에 군량미를 전해주고 돌아오던 길에 임진강 일대 주둔 고구려 군과 일전을 벌인 장소로 알려지고 있다. 삼국사기에 <호로하(瓠蘆河)에서 고구려군이 와해됐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서 호로하는 임진강의 옛이름이다. <호로>고을을 뜻하는 우리 한민족의 고대어 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이라는 학설이 우세하다.

 

황희 정승이 갈매기 벗삼아 노년 보낸 반구정(伴鷗亭)

조선 세종 때 정승이었던 황희(13631452)가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친구 삼아 여생을 보낸 곳이다. 임진강기슭에 세운 정자로 낙하진과 가깝게 있어 원래는 낙하정이라 불렀다.

황희가 죽은 후 조상을 추모하는 전국의 선비들이 유적지로 보호해 오다가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 버렸다. 그 뒤 이 근처의 후손들이 부분적으로 복구해 오다가 1967년 완전 복원했다.

건물 규모는 앞면 2·옆면 2칸이기둥 윗부분과 옆면 등에 꽃무늬 장식을 돌려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