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중고재경동창회보 1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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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호] 노스승 신판재 선생님을 50년만에 만나뵈니
작성자.관리자 (2019-09-16 08:02:23) 조회. 29

~! 그 호랑이 같던 풍채가 단아한 학으로 변해...


육신을 스쳐간 세월의 풍화흔적 뚜렷

묵향에 젖어 서예 즐기며 順天의 삶

초로 제자향해 원하는 공부 이뤘는가



얼마전 스승님의 서예실을 동기 백민호군(오른쪽)과 함께 찾아 뵙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강의실로 선생님이 들어서신다. 느릿한 걸음에서 육신을 스쳐간 세월의 풍화작용이 고스란히 읽힌다. 그런데 그 주위가 은은하고 환하다. 반팔셔츠 밖으로 보이는 팔뚝은 가늘었지만 얼굴은 빛나 보인다. 매주 수요일 아침 9시 경, 해운대 장산노인복지관의 서예강좌 A, 묵향이 은은하게 밴 서예반 강의실은 이렇게 한 사람 두 사람 老筆客들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신판재 선생님도 수강생 신분으로 이곳에 오신다.

50년 전 어느 날 수학시간, 교실로 선생님이 들어선다. 순간 학급은 정적으로 빠져든다. 메뚜기 소굴인 양 온갖 소리로 뒤엉켰던 원형교실은 비산하던 먼지마저 동작을 멈춘다. 얼굴은 물론 몸집까지 풍성하고 넉넉해 전체적으로 당당한 느낌의 선생님은 등장부터 남다르다. 수학의 시공간을 지배하는 선생님의 포스는 가히 호랑이의 그것이랄까. 칠판이라는 우주 속은 증명과 오류의 승패를 가르는 치열한 전쟁터다. 어떤 전투든 영웅들이 명멸하는데 끝까지 살아남아 올바른 解法을 거머쥔 스타들은 있게 마련이다. 그 스타들을 일구고 불밝히는 사령관이 바로 신판재 선생님이다.

 


 졸업 앨범 속 신판재 선생님 근영. 
선생님은 당시 수학문제 1개 틀릴 때 마다 솥두껑 같은 손바닥으로 학생들의 등판을 한번씩 내리쳤다. 

한 대만 맞아도 시퍼렇게 멍이 들 정도로 엄청난 위력의 손바닥 매였다. 


영화 스타워즈를 보면 제다이(Jedi)騎士다스 베이더(Darth Vader)’는 항상 광선검을 지니고 있다. 선생님 역시 그들처럼 손에 뭔가 쥐고 계셨다. 광선검처럼 뿌지직 푸른 예기의 섬광은 없으나 짧지만 묵중한 고집이 켜켜이 쌓여 외려 더 으스스해지는 느낌의 막대기다. 바로 30cm 남짓 훈육봉으로 그 때는 우리들의 정신마저 지배하였던 絶代 왕홀이었다.

최근 신판재선생님의 소식을 접한건 노인복지관에서였다. 봉사차원으로 참여한 신문편집업무중 만명 넘는 회원소식을 추리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 붓글씨 강습을 꾸준히 받고 계신다기에 27회 동기회 백민호 사무총장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서예반 강의실을 찾았다. 먼저 와서 기다리다 막 들어서는 선생님을 뵙는 순간 지금과 옛 모습이 교차되면서 감개가 무량해진다. 잊고 있었던 세월의 무게와 그리움의 실체를 피부로 느끼며 인사올리자 깜짝 놀라며 한손에 한명씩 우리의 손을 따뜻하게 그러쥐신다. 세상사를 벗어나 조용하게 살고자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왔는데~라고 하면서도 두 눈은 기쁨으로 일렁인다. 가까이서 뵌 자태는 順天의 삶을 지향하고 계셔서인지 91세의 노년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갈하고 향기롭다.

선생님은 이곳 복지관에서 7년간 붓글씨에 정진중이다. 한 점 휘호를 부탁하자 밖으로 알릴만한 재주가 안된다며 한사코 손사래치셔 아쉽지만 강사인 東雲선생(한국서예대전 심사위원)으로부터 선생님의 연하장 한 점을 찾아내 촬영하였다. 선생님을 뵙는 내내 속은 왠지 웃음으로 간질간질하다. 학창시절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얼굴표정과 훈육봉으로부터 시작된다. 내 경우, 선생님의 얼굴은 왠지 심술궂어 보이는 한 편으로 한쪽 입매에 장난기가 매달려 있는 묘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또한 조선시대라면 기로소(耆老所)에서도 최고 元老로 대우받을 만한 연세인데도 여전히 손에 뭔가를 쥐고 계신다는 그 아이같음에 괜히 유쾌해진다. 한 때는 듣기 좋은 말로 사랑의 매이겠거니와 지금은 한 자루 붓을 쥐고 있음이 다를 뿐이다.

우리 기수에서는 3학년 7반 담임을 하셨는데 훈육봉의 기억을 떠올리는 친구들이 많다. 월말고사가 끝나고 나면 선생님은 커트라인을 정해놓고 아랫점수를 받은 불쌍한 學人들에게 5점당 1대씩의 훈육을 가하셨다. 나 또한 절대왕홀의 그 가르침을 즐거이(?) 받은 불쌍한 부류에 속했었다. 요즘 세태야 난리칠 일이겠지만 그 카리스마덕에 우리들은 그나마 어른을 알고 질서를 이해하는 제대로 버릇있는 사람으로 다듬어지지 않았을까도 생각된다. 어느 날 선생님은 수업중 불쑥 이런 말을 던진다. “배우자는 말이야~ 수학을 전공한 여성이 최고니까 무조건 찍어!”. 당시는 이유를 몰랐는데 수학을 전공한 큰며느리를 들이고 보니 이제사 이해된다. 며느리 자랑될까봐 말을 아끼지만 매사 현명하고 과정에 충실하다.

인구모델을 도출해내는데 미분방정식이 쓰이듯 수학은 우리 사회현상과 물리법칙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졸업 후 우리 삶에 수학이 무슨 소용이 닿겠냐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지난 인생을 반추해 보니 그 반대다. 기획업무 등 직업전선에서 있었던 갖가지 경험을 비추어 보건대 그 모든 흐름이 수학적 사고에 기초되었음을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새삼 선생님의 은덕이 두텁고 온유롭다, 선생님의 자녀 21녀중 장남은 24회 동문인 신중모씨다. 선생님은 대구사범을 나와 40년 넘게 교직에 계셨다. 경고와 부여고, 남고의 평교사를 거쳐 부여고와 남고, 사직고에서는 교장으로, 또 장학관으로 근무하셨다. 선생님의 광선검 아니 훈육봉은 역시 파워풀하였는지 제자들 중 문재인 대통령과 오거돈 부산시장, 서병수 전 시장 등 정계를 비롯 학계, 법조계 등등에서 수많은 별들이 반짝인다. 같은 편이든 아니든~ ^^

선생님의 아호는 고담(暠潭)이다. 맑은 못이란 뜻으로 추구하는 바를 짐작케 한다. 낙락장송 한그루가 맑은 연못가에 여전히 푸르게 그늘을 드리운 모습이 절로 연상된다. 제자들의 앞날을 축원하는 선생님의 마음은 수산복해(壽山福海)란 연하장 문귀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테고.

少年易老學難成이라~, 한 때 소년이었다가 지금 60대 후반 初老(?)에 접어든 우리들을 보고 선생님은 이렇게 물음표를 던지실 것 같다. “원하는 공부는 이루었는가?”

 



 
올해초 스승님이 쓰신 신년휘호. 필체엔 아직 힘이 넘치는 듯하다.

 

 

/박찬용(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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