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중고재경동창회보 1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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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호] 고 권훈칠(20회) 동문 추모전 한벽원 갤러리를 가다
작성자.관리자 (2019-09-16 08:30:15) 조회. 16
추상화 만다라 시리즈에 수준 높은 예술혼 음미

낯익은 풍경화 앞에선 가슴 탁 트인 카타르시스

 


권훈칠의 풍경화에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그 풍경을 바라보는 작가의 깊은 시선이 담겨있다. 

 


화가는 치유의 과정을 포함한 정신적 의미를 정돈된 화면을 통해 제시함으로써 조화로운 세계를 창출해낸다. 


8월 마지막날 토요일 고 권훈칠 동문의 15주기 추모전이 열리고 있는 삼청동 한벽원(寒碧園) 갤러리를 찾았다. 대리석 석재로 만들어진 아담한 미술관이었다. 그 자체가 예술품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2개의 방으로 나뉘어진 전시관에 약 100여점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초입 들어서자 100호가 넘어 보이는 대형 추상화가 관람객을 압도했다. 작품 옆에 붙은 작은 푯말을 보니 제목은 심문(心紋)’, 마음의 무늬란 뜻이리라. 마름모꼴 정사각형이 화면을 꽉채우고 있고 그 도형 도형 안에 마치 유리 위에 물감을 아무렇게나 흘려놓은 듯한 기묘한 무늬. 안정을 희구하지만 늘 어지럽기 마련인 마음의 형상을 표현할 것일까. 제작기법은 카드보드에 아크릴릭이었다.

왼쪽 방에는 주로 추상화가 내걸려 있었다. 삼각형, 사각형을 계속 연결해 때로는 벽지 같다는 느낌을 주는 그림들이었다. 제목은 무제가 많았고 만다라란 이름이 붙은 것도 여러점 있었다. 만다라는 부처와 보살이 가득찬 제단이란 뜻의 불교용어. 큐레이터에게 작가가 생전에 불법에 심취했었나고 물어보니 그렇지는 않고 우주적 본질에 대한 표현 양식을 불교 만다라에서 빌어왔을 뿐이라고 한다. 좀 알쏭달쏭하지만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떡일 수 밖에 없었다. 작품 해설 팸플릿을 보니 서양 회화의 특징인 물리적 현상이 아닌 동양적 정신의 빛을 추구했다는 대목이 있었다. ‘동양의 빛이라, 그러고 나서 작품 앞에 서서 한참을 감상하다 보니 뭔가 희미하지만 심오한 느낌이 다가오는 듯 했다.

오른쪽 방에 들어서니 주로 풍경화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쪽에서는 구상(具象) 정도가 아니라 세밀화에 가까울 정도로 붓끝이 자세했다. 오일을 사용한 유화, 물감을 사용한 수채화, 심지어 파스텔화도 여러점 보였다. 왼쪽 옆방 추상화 앞에서 느꼈던 곤혹스러움이 사라지고 편안해졌다. 로마 수학시절 그렸다는 이태리 수도원 등의 유화도 몇점 있었지만 대부분 태종대, 제주도, 김포 수로, 귀덕리 방파제 등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었다.

참으로 아름다웠다. 권 화백이 미술 특기생으로 경남중에 입학할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놀라운 재능을 보여 중학도 미술특기생으로 입학했다는데 정말 탁월한 기량을 갖춘 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풍경화에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더러운 사회와 저열한 문명은 우선 배제되어야 한다는 그의 지론 때문이라고 했다. 시야를 무한히 허락하는 툭 트인 전경 만이 권화백이 동경했던 자연이었다는 것이다. 먼 산과 먼 수평선, 그리고 그 사이는 한없이 밝고 투명한 대기로 채웠다. 그것은 때로는 쓸쓸한 적막의 공간이기도 했다.

 

 

[미망인 김현주 여사 인터뷰] 



한참 권화백의 풍경화에 빠져 있는데 미망인 김현주 여사가 점심 식사를 마치고 갤러리에 나타났다. 김 여사는 고 김근준(1) 선배의 장녀다. 경남여고와 연세대를 졸업, 9살 많은 권화백과 중매로 결혼 한뒤 가정주부로만 살았다. 우리로 치면 29회에 해당하는 60대 초로의 부인이다. 하지만 세월이 이 분에게만 비껴갔나 싶을 정도로 젊게 보였다. 얼굴에 선친이었던 김선배의 윤곽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어렸을때는 아버지와 붕어빵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하며 화사한 웃음을 웃는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고 김근준 선배는 전 가족의 용마화를 실현하기 위해 아들들을 모두 경남고에 보냈으며 사위들도 모두 경남고 출신들로만 뽑았다. 첫째 사위 권화백도 그들 중 한명이며 자신의 제자이기도 했다. 장남 김인용(34) 동문은 부산에서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고, 막내 김재용(42) 동문은 분당 서울대병원의 저명한 신경외과 의사다. 둘째딸 김현혜씨의 남편, 즉 둘째사위 역시 경남고 동문으로 29회 서석희 변호사다.

-유작전을 여러차례 여셨는데 이번이 몇 번째인가요.

부산에서 두차례 연 것을 포함하면 다섯 번째입니다. 특히 이번에는 15주기라는 의미가 있어서 이 한벽원 갤러리와 인근 도올 갤러리를 함께 빌려 소장하고 있는 200여점의 작품을 한꺼번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아까 큐레이터에 물어보니 호당 100만원을 홋가한다는데, 판매도 하십니까.

아뇨. 이미 돌아가신 분이라 더 이상 작품이 나오지 않는데 팔아서 뭐하겠어요. 그냥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가 더 이상 소장할 수 없는 단계가 오면 미술재단 등에 기증할 생각입니다.”

-전시를 하지않을 때는 어디다 보관합니까.

평창동 집에 방 한칸을 따로 마련해 수장하고 있습니다. 전시를 위해 이들을 옮기는 일이 보통 어려운게 아니에요. 돈도 많이 들구요.(웃음). 그래도 계속 방에만 쌓아 놓으면 작품들이 숨을 쉬지 못해 질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또 남편을 좋아했던 예술가들이 꺽어지는 해에는 꼭 한 번씩 전시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한답니다. 이번에도 15주기잖아요.”

-만다라, 우의적 형식 등 추상화에 대해 설명 좀 부탁해도 되나요.

저도 잘 몰라요. 미술 평론가들이 근사하게 쓴 책자들이 있어요. 참고 하시면 좋겠어요. 남편이 이들 작품을 만들기 전에는 하루 24시간 화실에 틀어박혀 사색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매우 깊은 고뇌와 철학이 동원됐던 것 같아요.”

전시실 초입에 서서 인터뷰하고 있는데 그의 친지들이 몇 명 몰려왔다. 고인에 대한 이들의 추억담을 옆에서 듣고 있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왔다. 주말이라 내외국인 관광객으로 발디딜틈 없는 삼청로 문화거리를 혼자 걸으며 걸출했던 또 한명의 문화인 용마의 삶을 음미했다.

/편집인 강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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