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중고재경동창회보 1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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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호] [박관우 기자의 ‘漢詩산책’] 조선말 강위(姜瑋)의 홍안(鴻雁, 기러기)
작성자.관리자 (2019-09-16 08:33:17) 조회. 37
 

마음껏 확 트인 차가운 하늘 사랑하리



 

연중 4번의 환절기(in-between seasons)를 맞이한다. 사시사철 모든 것이 변화하지만, 환절기엔 변곡(變曲)’이 빠르고 깊고 넓다. 건강관리에 유의해야 할 시기이지만, 생활정서에도 변화가 적지 않다. 비록, () 계절에 비하면 그 기간은 짧지만, 변화의 느낌은 강하다. ‘계절감의 절정은 초봄과 초가을에 꽃과 단풍이 연출한다. 그러나, ‘절기(節氣)의 변화는 무섭다. 심리적으로 무섭다(afraid)다기 보다는 시간의 섭리(攝理)’가 엄중하다는 뜻이다. 실제 절기상 8월 하순 처서(處暑)’가 지나니, 아침 저녁으로 여름기온이 사라졌다. 한 낮엔 매미 소리가 이삭(ear &grain)을 패고 있지만, 귀뚜라미는 가을의 시그널을 울린다. 낮과 밤의 시간도 조정되고 있다. 9월 하순 추분(秋分)’지나, ‘동지(冬至’)로 가는 길엔 하루에 1분씩낮 시간이 짧아진다. 바야흐로 시방(時方)은 가을 문턱이다. 한반도를 오가는 철새 가운데 제비는 가고, ‘기러기가 어김없이 찾아온다.

 

豈爲區區稻量計(기위구구도량계) 밥 먹을 궁리만 구구하게 어이하리

秋來春去奈忙何(추래춘거내망하) 가을 오고 봄이 가니, 어찌 그리 바쁘던고

只愛寒空如意濶(지애한공여의활) 마음껏 확 트인 찬 하늘을 사랑하니

在泥日少在雲多(재니일소재운다) 진흙탕에 헤맬 날은 적고, 구름 위에 날 날은 많으리

- 강위(姜瑋, 18201884, 조선말), 鴻雁(홍안, 기러기)

 

기러기(鴻雁)를 시제로 삼았으되, 기러기는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강위는 김시습과 같이 방외지사(方外之士), 즉 아웃사이더(outsider)였다. 무인집안에서 태어났거나, 과거시험에 응시하지 않은 공통점도 있다. 그러나, 인생의 디테일(detail), 즉 세부정보는 다르다. 강위는 문반직(文班職)으로 전환할 수 없어서, 김시습은 단종폐위에 통분해, 시사풍로(詩詞風路)를 걸었다. 강위는 4개의 호(, pseudonym)를 가졌다. 그런데, 가을을 좋아해서인지, 2개에 가을을 넣었다. 추금(秋琴)과 청추각(聽秋閣)이다. 거문고의 가을 소리가 울려 퍼지는 넓은 집의 당호(堂號)가 아닐 수 없다.

 

耐霜猶足勝春紅(내상유족승춘홍) 서리를 견디는 자태, 외려 봄꽃보다 나은데

閱過三秋不去叢(열과삼추불거총) 삼추를 지나고도, 떨기에서 떠날 줄 모르네,

獨爾花中剛把節(독니화중강파절) 꽃 중에서 오직 너만이 굳은 절개 지키니

未宜輕折向筵中(미의경절향연중) 함부로 꺾어서 술자리에 보내지 마오.

 

-이규보(李奎報, 1168~1241, 고려 중기), 詠菊(영국, 국화를 읊다)

 

강위의 鴻雁(홍안)’과 같이, 이규보도 국화를 읊는다(詠菊)’고 했지만, 국화 한 글자 쓰지 않았다. 시어(詩語) 가운데 筵中(연중), 연석(筵席)이다. 대자리(), 즉 대오리로 엮어 만든 자리를 말한다. 뜻을 넓혀, 임금과 신하(臣下)가 모이어 자문 주답(諮問奏答)하던 자리이거나, 연회(宴會)나 주연(酒筵), 술자리를 말한다. () ‘詠菊(영국)’의 전체 흐름을 보면, 국화에 대한 외경심이 가득하다. 가을 석 달, 즉 삼추(三秋)를 지나도록 서리 등 계절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절개를 지키는 모습이 봄꽃 보다 아름답다. 국화()가 파생된 (움킬 국)의 구성원리(字源)를 봐도 그렇다. 허리를 굽혀 벼 이삭을 줍는 모습을 담았다. 곡식은 생명조건의 근본이 아닐 수 없는데, 생명 보다 아름다운 꽃이 어디있을까! 가을 국화주를 예찬한 시인이 적지 않지만, ‘절개의 상징을 보면 그럴수는 없는 것이다. 예로부터 매난국죽(梅蘭菊竹) 사군자(四君子)’의 표상이다. 특히 은둔하는 선비와 이미지가 상통했고, 지금도 한결같은 가을사랑을 받고 있다.

/박관우(36)편집위원, BBS 선임기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