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중고재경동창회보 1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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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호] [김동건의 ‘옛 그림 감상’] 명나라 진홍수(陳洪綬)의 미불배석도(米芾拜石圖)
작성자.관리자 (2019-09-16 08:34:57) 조회. 18
돌을 사람으로 여겨 의관 갖춰 절하고...

 

<미불배석도>견본채색, 세로 112cm×가로 50cm, 개인소장

 

 

대체로 돌이란 天地의 지극히 정()한 기()이다. 기가 돌을 내는 것이 마치 사람의 근락(筋絡:기혈의 통로)과 조아(爪牙:손톱어금니)와 같다(夫石者 天地至精之氣也 氣之生石 猶人之筋絡與爪牙)” /弘齋全書4 春邸錄太湖石記

 

위 글은 정조 임금이 돌()에 대한 기록이다. 과거 동양의 선인(先人)들은 자연물을 사람과 동등하게 대했다. 자연을 사람처럼 수평적으로 인식했던 이른바 의인화(擬人化)’이다. 역대로 괴석()을 사랑한 인물들은 많지만, 북송(北宋) 때 서화가인 미불(米芾:1051~1107)은 유난했다. 그는 마음에 드는 돌을 발견하면 석장(石丈)’이라 부르며 사람 대하듯 했고, 거기서 한걸음 나아가 의관을 갖추고 절을 했으니 이쯤 되면 의인화의 정점에 섰다고 볼 수 있다. 유명한 미불배석(米芾拜石)’ 의 고사로, 대대로 그의 명성에 힘입어 명사들 입에 회자되어왔다. 화가들도 이 고사를 소재로 작품을 남겨 선배의 자연 사랑과 초탈한 인품에 경의를 표했다. 소개하는 <미불배석도>는 진홍수가 미불의 拜石 고사를 작품화 한 것이다.

미불은 누구인가? 그는 중국회화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중하다. 화풍에서 수묵으로 횡점을 첩첩히 쌓아올린 이른바 미점준(米點皴)’은 후세 남종문인화의 새 경지를 개척했다. 그의 산수는 미법산수(米法山水)’미파(米派)’로 지칭됐다. 여기에 더해 그는 서화 감정에 탁월한 안목을 발휘하여 역대 서화의 진위를 감별했으며 그의 낙관에 찍힌 서화는 곧 진품이었다. 당시 황제 휘종(趙佶조길)은 그를 초치(招致)하여 서화학박사(書畵學博士)’라 칭했으니 호칭이 주는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작자 진홍수는 명말청초(明末淸初)를 대표하는 화가로 호는 노연(老蓮), 절강성 제기인(諸曁人)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해 책 다섯줄만 훑어봐도 전체를 암송할 정도였다. 10세쯤에는 글을 짓고 그림을 그려 주위 생신에 축하 선물했다. 그는 역대 화가의 장점을 취해 자신의 화풍을 개척했으며 특히 인물화 방면에 불후의 공헌을 남겼다.

그림에서 미불은 형태를 이름붙일 수 없는 괴석 아래에 검은 모자에 붉은 도포를 입고 손에는 긴 홀을 지니고 엄숙 단정한 얼굴빛으로 경건히 돌에 대해 읍하고 있다. 시종 두 명은 등을, 한명은 정면을 향하고 있다. 등을 돌린 시종은 큰 부채를, 나이 든 시종은 拜石 의식에 필요한 물을 담은 항아리를 들고 있다. 이러한 인물 묘사는 화면을 더욱 조용하고 묵직한 분위기로 이끈다. 화가는 돌을 대하는 미불의 자세를 통해 그를 탈속의 경지로 이끌고 있다.

이 그림은 괴석과 사람 사이 구도와 포치에서 변화가 미묘하다. 각 물상은 유기적으로 호응하여 생동감속에 질서가 있다. 의습(衣褶)은 둥글고 강한 철선묘를 사용하여 완만한 가운데서도 강인한 힘을 느낀다. 강렬한 색채 대비로 붉은 옷에 청색과 녹색이 섞인 돌 색깔 처리가 나무랄 데 없다. ()나라 인물화에 보이는 짙고 화려한 채색을 제거하여 예스럽고 소박하다.

/김동건(34)편집위원,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