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중고재경동창회보 1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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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호] 롯데 1차1번 지명 최준용군 아버지 최재근 동문(45회) 인터뷰
작성자.관리자 (2019-09-18 21:19:13) 조회. 18
모교 야구선수로 키우려 초6년때 전학보내

 
 

16강전이 열리던 목동야구장에서 롯데자이언츠 11번 지명을 받은 최준용군의 아버지인 최재근(45)동문을 만났다. 아들이 출전하지는 않았지만 경남고의 승리를 위해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현재 경남고 야구선수 중에는 최 동문 외에 안민성(1학년)군의 아버지 안승진(39)동문, 박종두(2학년)군의 아버지 박형규(43)동문 등 부자 용마가 있다고 한다.

최재근 동문은 재경동문으로 10여전까지만 하더라도 기별야구대회의 45회 주전멤버로 활동한 바 있다.

 

-축하합니다. 최준용 선수가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팀으로부터 11번지명을 받고, 또 청소년야구국가대표 선발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제 아들이 한동희, 서준원에 이어 경남고 출신으로 3년 연속 우선 지명받은 사실이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작년 서준원 선수(롯데)의 아버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야구장에 오시면 항상 쩌정쩌렁한 목소리도 응원을 하셨는데 부모님들의 지극정성이 이렇게 훌륭한 선수들을 키우고 또한 힘이 되지 않을 생각됩니다.

올해는 경남고 성적이 예년에 비해 좋지 않아 미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아들 성적도 좋고 모교가 전국대회 우승도 하는 것을 기대하지만 사실은 다치지 않고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큽니다. 프로야구에 지명이 되었다고 다 이룬 것이 아니며, 프로의 세계에서도 경쟁에 살아남은 선수만 기억됩니다. 하지만 큰 부상 없이 선수생활을 해야 다른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문선후배님들의 야구사랑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만, 감독이나 코치진도 최선을 다해 작전을 펼치는데 관중석에서 보실 때는 답답한 면이 많으실 줄 압니다. 하지만 우승은 좋은 선수와 훌륭한 감독이 있다고 우승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동문의 입장에서는 우승기를 들어올리는 행복한 상상을 합니다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더 응원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매번 전국대회마다 학부모님들께서 오셔서 응원을 하는데, 순번을 정하여 의무적으로 나오는지요?

부모님들의 참여는 자발적이며 절대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생업에 종사하시고 서울경기가 주중에 있으면 못 오시는 학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전날 참석여부를 확인하고 인원수에 따라 28인승 혹은 45인승 전세버스로 올라오고 경기에 이길 경우 다음날 경기를 위해 남아서 숙박을 하는 경우도 있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은 16강전인데 재경동문들이 많은 응원을 못 왔는데, 서운하지는 않나요?

저도 재경동문시절에 야구응원을 많이 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동대문야구장에 가면 못 보던 동기들도 만날 수 있고 그냥 야구를 하는 후배들이 자랑스럽고 기특해서 자주 갔었습니다. 하지만 입장이 바뀌었다고 서운하지는 않습니다. 다들 생업에 종사하시고 낮 시간엔 정말 시간 내서 오시는 선후배님들께는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동대문 운동장 이야기를 꺼내니 최준용 선수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는데, 기억하시나요? 그 당시 꼬마였던 최준용 선수가 야구경기를 마치고 나온 신본기(롯데)선수로부터 싸인볼을 수줍게 받는 기억이 납니다.

맞습니다. 저도 분명히 기억이 나는 게 아들(최준용)도 약간 수줍음을 타는 성격인데 신본기 동문도 처음 싸인볼 요청을 받았던지 어색해 하던 기억이 납니다.”

-최준용 선수는 언제부터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기별야구대회가 열리는 일패동 우리은행 야구장에 항상 아들을 데리고 갔고, 캐치볼을 하던 아들을 지켜보던 일부 선배님들이 야구를 시키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그 당시는 그냥 덕담으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점점 야구를 좋아해서 테스트를 받아보고 안산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부에 가입했습니다. 그러다가 6학년 때 부산 수영초로 전학을 보내고 그때 감독인 김상현(42)선배님의 가르침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대천중학교에 진학하고 많이 성장한 것 같습니다. 그때는 유격수도 보고 가끔 투수를 했는데 중학교 때 공인기록으로 141Km를 찍었습니다.

-최근 트렌드를 보면 수도권 학교가 강세를 이루었는데 왜 부산으로 내려갔나요?

만일 아들이 야구선수로서 성장하려면 모교인 경남고를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과거에는 부산, 대구, 광주가 여전히 야구명문고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모교가 우승을 못했지만 좋은 환경과 전통을 이어가고, 또 아들이 제 후배가 되는 것이 가문의 영광이라고 평소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손공(38)용마편집위원 손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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